우리 동네 골목에는 작은 치킨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 ‘깐부치킨’이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상호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오징어게임’의 그 깐부?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앞에는 ‘오징어 치킨’이란 신메뉴를 알리는 문구와 함께 작은 글씨로 ‘당신의 깐부로부터’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문구다. 바야흐로 2021년 가을은 ‘오징어게임’의 계절이다. 전 세계 1억1100만가구의 선택으로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다.드라마가 지금처럼 뜨기 전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뒤적거리다 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 나이가 벌써 육십이라고 했더니 내년에는 환갑잔치를 하라고 했다. ‘축(祝)’ ‘수(壽)’ ‘희(囍)’ 자 등의 글씨가 새겨진 과자와 떡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화려한 병풍을 휘두르고 앉아 가족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그 말 끝에 두 사람 모두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아이고, 요즘 누가 환갑잔치를 해. 팔순잔치도 안 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 봤던 큰집의 잔칫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큰집에 갔었다. 설, 추석,
나이 60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52년 동안 다니던 학교를 드디어 졸업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23년 만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논문을 쓰지 못했으니 거의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포기에 대한 변명은 여러 가지를 갖다 붙일 수 있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부터 시작해 “박사학위 받아서 무엇에 쓰려고” 등등 많았다. “나 혼자 알고 있으면 됐지 굳이 학위라는 형식이 필요한가”도 그럴듯한 핑계였다. 어떤 이유든 결론적으로는 “귀찮아서 쓰기 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나이에 특별히 어디 써먹을 것도 아닌데 생산적이지 않은 일
견우와 직녀 설화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가 칠석날(음력 7월 7일)에만 오작교 위에서 만난다는 내용이다. 피 끓는 청춘남녀가 일 년에 단 하루밖에 만날 수 없다니. 가혹한 형벌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이런 형벌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서였다. 문제는 그들의 만남을 주선한 신이 옥황상제였다는 사실이다. 옥황상제는 보기 드물게 근면성실한 두 남녀를 어여삐 여겨 짝을 맺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젊은이들이 결혼하면 더욱 생산력이 증대되어 모
2010년 8월,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 계곡에 다녀왔다. 무이산은 송(宋)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며 강학과 저술에 전념했던 곳이다. 주희는 36봉과 37암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무이산을 휘도는 아홉 굽이의 계곡을 따라 배를 타며 유람했다. 유람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 그 유명한 ‘무이도가(武夷櫂歌)’다. ‘무이도가’는 아홉 계곡의 아름다움을 묘사했기 때문에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라고도 한다. 필자가 무이산을 찾아간 이유는 특별히 주희를 숭모해서가 아니었다.
한 생을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믿는 신념과 노선을 따라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직진한다. 노선을 정하면 오히려 처신하기가 쉽다. 앞뒤 잴 것 없이 자신이 정한 원칙대로 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노선에 맞는 사람이면 무조건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 편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내 편이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포용이 된다. 다른 이유가 없다. 내 편이니까 그래도 된다. 자신의 노선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면? 무조건 안 된다. 아무리 그의 견해가 옳고 타당하더라도
얼마 전 한 산모가 중고물품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올린 글이 논란을 불렀다. 36주 된 아이를 20만원에 입양 보내고 싶다는 글이었다. 그녀는 글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아이의 사진 2장도 첨부했다. 글과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이 입양이지 돈을 받고 아이를 팔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했다.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해당 게시물이 이용자들의 공분을 샀고, 캡처 사진이 도내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카페 등으로 퍼지며 삽시간에 화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되자 경찰은 그녀의 IP를 추적한 끝에 여성과 아이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한
살다 보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건과 만날 때가 있다. 그 사건의 의미가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2008년 1월 1일에 전남 담양으로 답사를 떠났다.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이 그리웠기 때문이다.소쇄원과 환벽당을 거쳐 식영정(息影亭)에 도착하자 눈이 펄펄 내렸다. 쌓인 눈 위를 또다시 덮어주는 눈. 식영정은 ‘그림자가 쉬는 정자’라는 의미가 그러하듯 사람의 마음까지 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 멋과 아취가 있는 정자이니 송강(松江) 정철
이번 추석 최대의 화제는 단연 나훈아였다. 그동안 봇물처럼 쏟아지던 트로트에 피로감을 느끼던 사람들조차도 나훈아의 등장에는 반색을 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고향 대신 TV 앞에 앉아 노장의 귀환에 열광하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특히 노년층들의 반응은 남달랐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두 시간 반 동안 무대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그를 보면서 “저게 가능하구나!” 싶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나이가 나이니만큼 “저러다 무릎이라도 삐끗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조바심이 없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나훈아는 한창때
주나라 건국의 주역은 문무와 강태공 그리고 주공(周公)이다. 그중 주공은 주나라를 얘기할 때 문무와 강태공보다 더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공자는 성인(聖人)의 계보를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으로 설정했는데 그중 주공을 가장 존경하여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공자는 평생 동안 주공처럼 되기를 갈망했고 주공과 같은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자 했다.공자가 주공을 얼마나 흠모했던지 꿈속에서라도 뵙기를 고대할 정도였다. 공자는 주공이야말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왕권이 교체되면 새 왕조의 가치는 예악과 문물
은·주(殷周)의 교체기는 기원전 1046년이다. 아득하게 먼 그 시절에도 보수와 진보는 있었다. 각 진영의 대표 선수들은 그들 나름의 정치철학과 사명의식으로 무장하고 당의 노선을 결정했다. 물론 서열에서 밀리거나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그들은 이념 대신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했고 우왕좌왕하던 시류는 자연스럽게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었다. 은나라를 지키자는 쪽이 온건파였다면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며 새로운 왕조를 세우자는 쪽이 급진파였다. 문왕과 강태공은 주나라를 건국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간 급진파였다. 반면
왕권이 교체되고 왕조가 바뀌는 구간은 자연생태계의 하구와 비슷하다. 하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담수와 해수, 즉 민물과 짠물이 만나면서 물속 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하는 곳이 하구다. 민물에 살던 물고기가 짠물을 마셨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상상해 보라. 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산 사람들의 심정이 딱 민물고기가 바닷물을 만났을 때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하구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 된다. 물길의 방향에 따라 여러 형태의 습지와 갯벌이 발달하고 환경이 좋으니 온갖 종류의 물고기와 새와 조개와 곤충들이
인생을 되돌아보면 삶의 분기점이 되는 때가 있다. 그 분기점을 ‘터닝포인트’라고 한다. 터닝포인트를 계기로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연한 기회에 귀인을 만나 꽉 막힌 인생길이 뻥 뚫릴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큰돈이 들어와 옹색했던 살림살이가 확 펴질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불행도 터닝포인트에 해당한다. 암에 걸리거나 실직을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보이스피싱에 걸려 큰돈을 날릴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그 사건들은 인생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는다. 터닝포인트는 대나무의 마디에 해당한다. 대나무는 완전
생각이 사무치면 꿈으로도 그 생각이 연장된다. 꿈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도 있고 병이 나을 수도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문으로 유명한 성철 스님은 ‘몽중일여(夢中一如)’를 강조했다. 참선할 때 잡은 화두가 깨어 있을 때는 물론이고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타성에 젖은 참선 수행 풍토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법문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런데 몽중일여를 다른 측면에서 해석해 보면 무의식의 세계라고 여겼던 꿈마저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이 절실하면 꿈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출발할 때는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헌신해 보려는 각오로 시작했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열심히 뛰다 보니 이름이 알려졌고, 열혈팬들이 운집하고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짐에 따라 벼슬이 주어졌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벼슬과 함께 권력이 생기다 보니 주변에는 온통 칭송하는 사람과 굽신거리는 예스맨들만이 포진했다. 그 지점에서 보통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전도몽상에 빠지기 십상이다. 자신을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했던 사명감과 역사의식은 오만함과 권위의식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확신하게 된다. 누
5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전남 여수법원에서 특강을 했다. 오래전에 예정되었던 강의가 코로나19로 전부 취소되는 상황에서 다행히 그날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한 자리 건너 앉아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보니 새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실감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 하고 지식과 정보는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앞으로의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비대면과 언택트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기계를 통한 만남은 대면과 컨택트 사회에서의 온기와 인간다움이 제거된다. 그 결과 고립감과 단절감을
영웅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때였다. 청계천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대통령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궁창 냄새가 펄펄 나는 죽은 하천을 살려 물길을 터주었으니 대통령이 문제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정반대 되는 행보를 취했다. 사대강 사업을 논란 속에 벌이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말년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물의 속성은 흐르는 것이다. 그 속성을 무시했으니 평탄할 리가 만무하다. 청계천을 흐르게 할 정도로 혜안이 있던 사람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한다. 태어날 때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평범하게 지어졌겠지만 사는 동안에는 온전히 그 사람의 발자취가 된다. 죽은 후 한 사람의 행적은 오로지 이름 석 자로만 기억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대왕과 연산군은 똑같은 군왕의 신분이었으나 성군과 패륜군주로 불린다. 안중근과 이완용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의사와 매국노라는 상반된 칭호를 받았다. 40대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결국 어떤 이름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뜻이다.순(舜)임
개들의 수난시대다. 진중권씨와 홍준표 의원이 설전을 벌이면서 애먼 개들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얌전한 개들을 투전판에 먼저 끌고 나온 사람은 진중권씨다. 그가 홍준표 의원을 향해 “집 나간 X개”라고 화살을 날리자 홍준표 의원 역시 “X개 눈에는 사람이 모두 X개로 보이는 법”이라고 반격했다. 영문도 모른 채 호출당한 X개 입장에서 보면 쌈박질을 할 때마다 자신들을 들먹이는 사람들이야말로 X개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디 그뿐인가. 죄 없는 축생을 불러낸 것도 모자라 자기들끼리 서로 뇌가 있네 없네 하며 골빈
화장하지 않는 여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TV를 통해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얼굴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두렵고 공포스러운 시간을 버텼다고 토로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주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방호복을 입고 땀에 젖은 모습으로 질병과 싸우는 모습은 이마와 콧잔등에 밴드를 붙인 얼